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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널리즘 journalism/지역신문

재난이 된 한국 언론, 미래는 있는가

2020년 5월 8일
경남도민일보
창간 21주년 기획 코로나19 전후의 경남 (3) 기회를 걷어찬 언론의 미래

 

2020년 2월 21일 경남지역 첫 코로나19 확진자가 나온다. 합천군에 사는 확진자는 대구에서 감염된 것으로 확인됐다. 김경수 경남도지사는 21일 오전 10시 30분 첫 브리핑에서 양성 판정을 받은 확진자가 4명이라고 밝힌다. 행정과 함께 경남지역 언론도 코로나19 대응 체제로 들어간다.

 

추가 확진자와 동선 정보를 비롯한 코로나19 관련 뉴스는 노출하기 무섭게 소비됐다. 첫 확진자가 발생한 2월 21일부터 5월 6일까지 경남도민일보 기사 조회 수 상위 100위 가운데 87건이 코로나19 관련 보도다. 누적 조회 수도 다른 분류 기사를 압도한다. 코로나19는 어느 때보다 뉴스 소비자 눈길을 기성 언론 쪽으로 쏠리게 했다.

 

◇기회 얻은 언론 = 코로나19는 외면받던 기성 언론이 존재 가치를 증명할 드문 기회였다. 신속하고 정확하면서 충분히 검증된 정보 수요가 급증했다. 확진자 발생 초기에는 포털과 SNS, 메신저를 매개로 정보가 무차별 유포됐다. 아주 익숙한 정보 전파 방식이다. 하지만 검증되지 않은 정보로 말미암은 부작용은 곧 드러났다. 근거 없는 대응 요령은 혼란을 부추겼고 어설픈 정보 확산은 불안을 키웠다. 가짜 뉴스와 가짜를 검증하겠다는 뉴스가 술래잡기하는 바닥에 정작 필요하고 유용한 정보는 설 자리를 잃었다. 빨리 접했지만 정확하지 않거나 정확해도 느린 정보 모두 소용없기는 마찬가지였다.

 

정부는 '가짜 뉴스' 부작용을 심각하게 경고한다. 뉴스 생산자와 소비자도 수긍했다. 질병관리본부는 정기적으로 확진자 정보와 정부 대응을 공개하면서 신뢰를 쌓는다. 정부가 신속하고 투명한 방식으로 정보 생산 중심에 서면서 언론은 불필요한 속보 경쟁에서 어느 정도 벗어난다. 검증된 정보를 잘 정돈해서 전달하는 것은 제대로 훈련된 기성 언론이라면 가장 익숙한 작업이다.

 

코로나19 사태 초기부터 구글(Google)이 발표한 유튜브 콘텐츠 정책도 주목해야 한다. 코로나 관련 콘텐츠 수익화를 아예 차단하는 '노란 딱지'는 가짜 뉴스 생산을 가장 효과적으로 견제한다. 새로운 콘텐츠 소비 방식만 선호하던 뉴스 소비자가 기성 언론에 눈을 돌릴 계기가 또 마련된 셈이다. 게다가 긴박한 방역 상황과 21대 총선 기간이 맞물린다.

 

◇언론이 남긴 것 = 21대 총선은 더불어민주당이 압승했다. 정부는 5월 들어 방역 정책을 '사회적 거리 두기'에서 '생활 속 거리 두기'로 전환한다. 정치·사회적으로 의미 있는 전환기를 맞았다. 이 과정에서 모처럼 기회를 잡은 기성 언론은 어떤 역할을 했을까. 이명재 민주언론시민연합 정책위원 평가는 신랄하다.

 

이 정책위원은 지난 4월 27일 민주언론시민연합(ccdm.or.kr) 기명 칼럼 <언론포커스>에 '코로나와 한국 언론의 낙오'라는 글을 기고한다. 이 글에서 코로나 사태 속 언론이 보여준 모습은 '재난 언론'이 아니라 '언론 재난'에 가까운 것이라고 비판했다. 재난을 보도하는 언론이 아니라 언론 자체가 재난이었다는 분석이다. 그는 "언론은 문제의 전달자가 아니라 생산자였다"고 지적했다.

 

기성 언론 쪽에서 비판보다 비판을 부정할 근거가 별로 없다는 게 아프다. 특히 보수 유력 언론이 불신을 조장하고 정부와 시민을 이간질하며 확인된 성과마저 깎아내린다는 비판은 코로나 사태 초기부터 줄곧 이어졌다. 총선 기간과 겹치면서 '의도적'이라는 의심을 피하기 어려웠다.

 

이런 보도 행태는 △중국 혐오 △마스크 공급 △방역 정책 비교 등에서 더 도드라졌다. 터무니없는 예측과 속단으로 시간이 흘러 누리꾼에게 '성지 순례' 당하는 사설과 칼럼은 웃어넘길 수준이 아니다. 방역 당국을 헐뜯을 수 있다면 사실 왜곡도 서슴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우리보다 미숙한 외국 정부 대응을 대단한 모범처럼 치켜세운 보도도 흔하다. 외국 정부 대응은 그저 우리 정부를 비난할 수단으로 유용했다.

 

2월 25일 <조선일보> 보도는 대표적인 자기기만 사례다. <조선일보>는 구독료를 자동이체하면 마스크 세트를 준다는 알림 기사를 게재했다. 이 알림과 같은 면에 배치한 머리기사 제목이 '마스크 사려고 난리인데…정부는 마구 뿌리고 있었다'이다. 정부도 마스크를 사은품으로 공급하라는 것인지, 정부 때문에 사은품으로 제공할 마스크가 없어서 문제인지 모를 지면 구성이다.

 

뉴스 소비자는 '민족정론지 BBC'라는 역설적인 반응으로 기성 언론 보도 행태를 꼬집었다. 오보와 정파적 보도에 지친 이들에게 사실을 바탕으로 건조하게 한국 정부 대응을 긍정 평가한 외신이 오히려 신선했다. 기성 언론 혐오를 외신 신뢰로 드러낼 만큼 뉴스 소비자는 명민했다.

 

◇지역언론이 인식한 위기 = 그나마 지역언론이 거대 매체와 다른 길을 택한 것은 현명했다. 확진자 발생 초기 속보 경쟁 관성으로 말미암은 혼란이 없지는 않았다. 하지만 확신할 수 없는 정보 유통이 역효과를 낳는다는 판단도 빨랐다. 질병관리본부와 지방자치단체로 이어지는 확진자 정보를 정기적으로 전달하면서 지역사회 혼선을 최소화했다. 객관적 사실을 주관적으로 왜곡해 혼란을 부추기는 보도는 드물었다.

 

<경남도민일보>는 2월 24일 자 1면에서 코로나19 관련 보도 방향과 대응 원칙을 밝혔다. '신속·정확한 보도를 지향하고 막연한 불안 조장을 지양한다'로 정리할 수 있는 원칙은 독자에게 큰 호응을 얻었다. 방역당국이 제공하는 정보를 착실하게 전달하던 지역언론이 돋보인 쪽은 지역사회 회생을 바라는 기획이다. 좁게는 미담 발굴에서 넓게는 위기 진단과 이를 극복하는 제안까지 다양한 시도를 선보였고 진행 중이다. 미디어 권력으로 정파적 이익을 얻으려는 거대 매체와 구별되는 면이다. 이런 대응이 마냥 지역언론 역할을 고민하는 과정에서 나왔다고 단정하기는 민망하다. 지역언론도 특정 지역 안에서 거대 매체 같은 기득권과 영향력을 선호하기 때문이다. 오히려 코로나19 사태가 지역사회 일개 구성원으로서 지역언론 위치를 제대로 인식하게 강요했다고 보는 게 타당하다.

 

<경남도민일보>는 4월 1일 자 1면에 감면 발행을 알리는 사고를 게재한다. 규모가 더 큰 지역 일간지 가운데 이미 지난 1월부터 감면을 한 매체도 있다. 대부분 지역언론은 생산비용을 줄이려는 조치를 서둘러 진행했다. 지역사회 위기가 치명적인 수익성 악화로 이어지는 현상이 남긴 교훈은 분명하다. 지역언론은 '지역사회 마비는 지역언론 궤멸'이라는 평범한 명제를 속성으로 뼈저리게 학습한다. 현상을 한국 사회 밖에서 내려다보는 듯한 거대 매체와 뉴스 생산 출발점이 달랐다.

 

◇언론의 미래? = 정보를 얻는 수단으로 기성 언론이 외면받은 지는 오래다. 뉴스 소비자는 훨씬 신속하고 직관적이며 자기 취향에 맞는 수단에 이미 익숙하다. 코로나19 사태는 잠시라도 정보 수집을 기성 언론에 의지할 수밖에 없는 기간을 강요한다. 기성 언론 처지에서 귀한 기회다. 하지만 이 기회를 제대로 살린 매체를 떠올리기 어렵다. 새로운 신뢰를 쌓기는커녕 사회적 위기조차 아랑곳하지 않는 이기적인 집단으로 거듭 찍혔다. 보수 유력 언론을 향한 불신이 반대 성향 매체에 대한 신뢰로 이어진 것도 아니다. 이 점이 기성 언론 전체로 봤을 때 더욱 안타깝다. 기성 언론은 외면받던 과거, 기회를 살리지 못한 현재에 이어 '코로나19 이후'를 어떻게 그릴 수 있을까. 안차수 경남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는 언론이 정보 공급자로서 차별성을 드러내지 못한 점을 짚었다.

 

"이번 코로나19 사태에서 공신력 있는 정보는 질병관리본부가 공급했습니다. 언론은 공급되는 기초 자료를 누적하고 지표가 가리키는 방향과 경향성을 통계적으로 분석해내야 합니다. 방역 당국과 서로 보완할 수 있는 다른 정보를 제공하는 것이지요. <뉴욕타임스>나 <가디언> 같은 매체가 하는 작업입니다. 우리 질병관리본부가 잘하고 있지만 만약 질병관리본부에서 오류가 생기면 누가 잡아내지요?"

 

CNN은 지난 4월 21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건강 위중설을 보도한다. 이후 <조선중앙통신>이 순천인비료공장 준공식에 참석한 김정은 국무위원장 소식을 전한 게 5월 2일이다. 이 기간 국내 언론은 김 위원장 사망 가능성을 99%까지 끌어올린다. '언론의 미래'는 사치스러운 고민인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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