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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널리즘 journalism/지역신문

지역신문 뉴미디어가 만드는 선거보도 전형

2020년 4월 10일 유튜브 경남도민일보 채널에 ‘부동층을 위한 투표 안내서’ 마지막 영상이 떴다. 2개월 남짓 진행한 21대 국회의원 선거 기획이 마침표를 찍는 순간이다. 편집국에는 뉴미디어부원 3명뿐이었다. 마음껏 환호하고 서로 격려했다. 시작부터 마무리까지 빈틈없는 협업이 빚은 결과물에 잠깐 취했나 보다. 꽤 오랜만에 느낀 기분이다. 퇴근하고 나서 함께 작업한 손유진·최환석 기자에게 메시지를 남겼다.

 

“수많은 요청을 끝까지 빠짐없이 완벽하게 소화해 내 고맙습니다. 각자도 훌륭했고 팀워크도 더 바랄 게 없습니다. 무엇보다 지역언론 뉴미디어가 가야 할 방향이 무엇인가 고민하고 실현하며 결과를 확인하는 과정이 좋았습니다.”

 

선거 기획 고민을 제안한 첫 회의 날짜가 1월 21일이다. 첫 기획인 ‘총선 예비후보, 그들은 누구를 대표하나’를 공개한 날짜가 1월 31일이다. 이 기획을 낳은 질문은 아주 간단하다.

 

“도대체 경남에서 국회의원을 하겠다고 나선 사람들이 누구야?”

 

소개할 기획은 모두 이처럼 단순한 질문에서 시작한다. 이 과정에서 경남도민일보 뉴미디어부가 추구하는 선거 보도 방향도 정리됐다. ‘후보자 정보를 최대한 제공하고 유권자 선택을 돕는다’. 선거 기간 언론이 당연히 해야 할 일 아닌가? 맞다. 그런데 그 당연한 것을 당연하게 해내는 매체가 그렇게 많지 않다.

 

 

총선 예비후보, 그들은 누구를 대표하나. @경남도민일보

 

지면을 벗어나 할 수 있는 것

 

‘총선 예비후보, 그들은 누구를 대표하나’는 구조로 보면 간단한 통계 기사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공개한 예비후보 등록 자료를 그대로 활용해 정리했고 간단한 분석과 그래프를 덧붙였다. 다른 기획과 견줘 품이 유난히 들어가는 작업도 아니다. 경남지역 예비후보는 직업 정치인, 50대 남성이 많더라는 결론은 일차원적이다. 뉴미디어부가 이 기획에 의미를 둔 이유는 보도 가치보다 방식에 있다. 신문 처지에서 보면 예비후보 관련 기획은 보도하기 애매한 지점이 있다. 어차피 절반 이상은 선거에 나오지도 않는다. 분석 대상으로 삼는 것부터 의문이다. 날마다 숫자가 바뀌는데 보도 시점은 어떻게 정해야 할까? 너무 이르면 얼마 지나지 않아 의미 없는 통계가 될 게 뻔하다. 공식 후보 등록 시점과 가까워질수록 예비후보 가치는 떨어진다. 그렇다고 일정 시기 반복해서 같은 보도를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미디어로서 신문은 제약이 많은 도구다.

 

뉴미디어부는 1월 31일 ‘총선 예비후보, 그들은 누구를 대표하나’를 보도하고 나서 의미 있는 수치 변화가 생길 때마다 기사를 갱신하기로 했다. 이 기사는 3월 4일까지 5회에 걸쳐 다시 작성된다. 통계에 반영한 최종 예비후보 수는 175명이다. 기사를 다시 쓸 때마다 당연히 수치, 분석, 그래프를 내용에 맞춰 수정했다. 신문으로 구현하기 어렵지만 온라인에서는 간단한 작업이다. 이 내용은 다시 팟캐스트 <오디오 맥도날드> 콘텐츠로 재가공했다. 온라인-오디오-영상을 오가는 제작 방식은 뉴미디어부가 시도한 이번 선거 기획 특징이다. 이쯤에서 소개하면 적당할 것 같은 뉴미디어부 구호는 ‘신문이 못하면 우리가 한다’이다.

 

 

신비한 후보사전 @오디오 맥도날드

 

신비한 후보사전

 

경남지역 16개 선거구 공식 후보는 74명으로 확정됐다. 후보가 확정되자 바로 진행한 기획이 팟캐스트 방송으로 제작한 ‘신비한 후보사전’이다. 선거 기획 첫 번째 목표인 ‘후보자 정보를 최대한 제공한다’를 구현한 콘텐츠다. 방송에서도 밝혔지만 ‘신비로운 후보사전’은 유명 시사 팟캐스트 <그것은 앓기 싫다>가 전국 단위 선거 때마다 제작하는 ‘데이터 센트럴’ 형식을 차용했다. 이미 2019년 창원과 통영에서 진행한 보궐선거 때 시험 제작한 경험이 있어 작업에 두려움은 없었다.

 

방송은 4월 6~9일 나흘 동안 매일 공개했다. 후보 기본 정보는 중앙선거관리위원회 홈페이지에 잘 정돈돼 있다. 공식 선거운동 기간에는 후보 공보물도 PDF 파일로 볼 수 있다. 공보물을 통해 선거관리위원회 홈페이지에 빠진 정보와 후보 정책, 공약 등 다채로운 내용을 추가한다. 현역 의원 활동 사항이 궁금하다면 참여연대가 운영하는 ‘열려라 국회’ 사이트가 있다. 여기에 후보 관련 보도까지 덧붙이면 내용은 제법 풍부해진다. 재료는 이미 차고 넘친다. 대본을 작성하고 녹음하고 편집하는 일상이 반복됐다. 나흘 동안 쓴 ‘신비한 후보사전’ 대본은 원고지 370매에 이른다. 이는 팟캐스트 콘텐츠로 제작한 이유에 대한 가장 직관적인 설명이 된다. 일단 하루 평균 90매가 넘는 원고를 소화할 수 있는 지면은 없다. 만약 영상으로 제작했다면 적어도 편당 3일 정도 달라붙었을 것이다. 공정을 고려하면 마지막 편 제작 완료 시점이 4월 18일쯤인데 선거는 4월 15일, 사전 선거는 4월 10~11일이었다. 내용(저널리즘)을 포기하지 않고 적절한 시점에 기획을 공개할 수 있는 수단은 오디오가 가장 적당하다고 판단했다.

 

한 명이 자료를 바탕으로 대본을 완성하면 다른 한 명이 대본을 통해 자료를 확인하며 오류를 바로잡았다. 대본 검증을 마치면 세 명이 녹음을 진행했다. 녹음을 마치면 한 명이 오디오 파일 편집을 시작했고 다른 한 명은 다른 기획에 쓸 영상 기초 작업에 들어갔다. 한 가지 기획을 진행하면서 다른 기획 준비 작업이 같이 들어가는 업무 방식은 선거 기간 내내 이어진다. 두 명이 뉴미디어 콘텐츠 작업에 묶이면 나머지 한 명이 홈페이지 관리를 비롯한 일상 업무에서 발생하는 공백을 메웠다. 한 명이 한 순간만 삐끗해도 모든 게 쉽게 무너질 수 있는 상황이었다. 돌이켜보면 협업 효율이 정점을 찍었던 시기다. ‘신비한 후보사전’에는 △지역구 특성 △선거 쟁점 △후보 정보 △정책 △공약 등이 자연스럽게 담겨 있다.

 

진행자가 적당히 유머를 섞고 내용에 따라 어감을 조정할 수 있다는 게 오디오 콘텐츠 특징이다. 16개 선거구에 모두 출마한 국가혁명배당금당 후보 공약은 ‘33정책’으로 모두 같다. 신문 제작 과정에서 ‘33정책’을 반복해서 소개할 수도 없고 있는 공약을 배제할 수도 없어 난감한 상황을 겪기도 했다. 팟캐스트에서는 어떻게 처리했을까?

 

“국가혁명배당금당 ○○○ 후보 공약은 국가혁명배당금당입니다.”

 

이 기획이 지역언론이 할 수 있는 선거 보도 가운데 정점일 리는 없다. 하지만 이 정도가 선거 보도에서 기본은 돼야 한다고 확신한다. 이 작업만 해낸다면 최소한 ‘깜깜이 선거’는 없다고 장담한다. 게다가 이 기획은 전국 단위 매체보다 지역언론이 훨씬 강점을 드러낼 수밖에 없다. 현재 국회 기준 253개 선거구를 이런 식으로 다룬다? 2주 남짓한 공식 선거운동 기간 내에? 대부분 전국 단위 매체는 그 기회비용을 다른 데 쓰려 할 것이다.

 

 

부동층을 위한 투표 안내서 @경남도민일보 유튜브 채널

 

부동층을 위한 투표 안내서

 

선거 기획 두 번째 목표 ‘유권자 선택을 돕는다’에서 핵심은 유권자에게 변별력을 제공하는 데 있다. 충분히 정보를 제공했다면 한 지역구 내 후보끼리 차이점을 분명하게 드러내야 선택에 도움이 된다. 변별력 제공 대상은 ‘부동층’으로 정했다. 선거 직전까지 마음을 정하지 못했다면 최소한 이 정도 기준으로 판단하고 투표에 참여하라는 권유인 셈이다. 변별이 목적인 기획이라면 오디오와 더불어 영상까지 더하면 좋겠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준비한 게 후보 74명 카드를 만들어 클릭하면 뒤집히게 만든 틀이다. 이 도구 역시 2019년 보궐선거에서 검증한 바 있다. 앞서 ‘신비한 후보사전’ 녹음 파일을 편집하는 동안 다른 한 명이 다음 기획을 위해 준비한 게 바로 이 작업이다.

 

오디오는 16개 선거구를 모두 한꺼번에 녹음했고 카드를 뒤집는 영상은 선거구별로 떼어내서 제작했다. 유권자가 필요한 선거구만 편하게 볼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이 작업은 사전투표 기간 첫날인 4월 10일 오전 10시에 시작해서 오후 7시까지 하루 만에 마쳤다. 작업 과정은 이렇다. 두 명이 나눠서 16개 선거구 대본 작업을 오전 중에 마쳤다. 다른 한 명은 녹음실 모니터에 선거구별로 실시간으로 후보 카드를 펼쳐 뒤집을 수 있도록 세팅했다. 오후에 두 명이 녹음을 진행했고 한 명은 대본에 맞춰 카드를 뒤집으면서 영상 파일로 남겼다. 한 명이 녹음 파일 편집에 들어갔고 두 명은 오디오와 영상을 합쳐 편집을 시작했다. 팟캐스트 업로드를 마치자 나머지 한 명도 영상 편집에 합류했다. 그렇게 42분 오디오 파일 하나와 3분 남짓 영상 16개를 올렸다.

 

굳이 작업 과정을 공개한 이유는 두 가지다. 먼저 어떤 매체든 좋으니 우리 작업을 바탕으로 다음 선거에서 더 나은 시도를 보여주길 바란다. 더 좋은 성과를 낸다면 우리는 거기서 또 배우고 영감을 얻을 것이다. 아울러 선거 기획은 아이디어와 의욕, 감각만으로 되는 게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결과에 감춰진 지루하고 고단한 작업 시간, 섬세한 설계와 구성원 사이 신뢰를 바탕으로 한 협업이 전제되지 않는다면 결과물조차 끌어내기 만만찮을 것이다. 늘 열악한 제작 환경을 호소하는 지역신문이라면 더 그렇다.

 

 

우리가 전형을 만들 수 있을까

 

디지털 시대 미디어 환경 변화 속에서 지역신문도 처절한 생존 경쟁을 벌이고 있다. 소비자가 원하는 콘텐츠는 무엇이고 이를 어떤 방식으로 제공할 수 있을지 늘 고민한다. 재원과 인력 한계 속에서도 뉴미디어에 대응하고자 역량을 한계까지 짜내고 있다. 그럼에도 지역 신문이 의욕적으로 진행하는 뉴미디어 콘텐츠를 향한 평가는 평균 이하다. 가장 지역적이면서 큰 이벤트인 국회의원 선거에서조차 지역민 관심사는 자기 지역구가 아니다. 서울 종로에 나온 이낙연·황교안 후보 행보, 선거에서 각 정당이 차지할 의석수 예측과 판세에는 예민해도 자기가 사는 지역에 아동 성추행 관련 전과 3범이 후보로 나온 지 모르는 유권자가 대부분이다. 문제 시작은 어디일까? 지역신문 뉴미디어 분야가 할 수 있는 선거 보도 전형을 만들고 싶었다. 시작은 무모했으나 유권자 시선에서 우리 기획을 재평가한 덕에 적잖은 용기를 얻었다. 거듭 강조하지만 앞으로 지역신문 선거 보도에서 우리 작업이 지향점이 아니라 출발점이기를 바란다. 거기서 시작한 경쟁이 성과로 드러날 때 지역언론은 더 성장할 수 있을 것으로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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