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분류 전체보기

(38)
2012년 여섯 살 # 놀이동산 단둘이 외출은 처음이었다. 조심스레 선택한 경로는 집과 가까운 놀이동산, 놀이동산과 가까운 미술관이었다. 아빠 앞에서 늘 수줍던 너는 마음껏 웃고 놀라며 뛰어다녔다. 네 표정을 남보다 많이 알지 못해 부끄러웠다. 엄마는 느닷없는 부녀 외출을 치켜세웠다. 고단한 육아에서 잠시라도 벗어날 수 있는 가능성을 엿보았나 보다. 너에게 나태했던 일상을 잊고 잠시 으쓱했다. 그날 저녁 너는 끊임없이 기침하며 골골거렸다. 꺅꺅거리며 트램펄린에서 한참을 뛰어올랐던 모습이 떠올랐다. 말리기는커녕 마냥 흐뭇하게 지켜봤던 것을 후회했다. 퀭한 눈을 마주하니 도망치고 싶더라. 좋은 아빠 노릇을 하고 싶었을 뿐인데 미안했다. # 해결사 3년 만기 대출금을 털었다. 체감 월급을 30만 원이나 인상한 셈이란다. 능력 있..
2013년 일곱 살 # 질문 새해 들어 부쩍 질문이 늘었구나. '왜'로 시작해서 '왜'로 다시 이어지는 끝없는 질문 말이다. 대답하는 아빠야 물론 피곤하다. 하지만, 따지고 보면 살면서 '왜' 만큼 본질적인 질문이 얼마나 있을까. 차마 대놓고 누구에게 묻지 못하는 것을 너는 당당하고 거침없이 묻는다고 생각하니 갑자기 부러웠다. 당연히 아이가 누릴 특권이다. 언제까지일지는 모르겠으나 오랫동안 그랬으면 좋겠다. # 역차별 차에서 내리며 네 가방과 엄마 가방 그리고 정체를 알 수 없는 커다랗고 묵직한 봉투, 아빠 가방 두 개까지 모두 양손에 들었다. 노는 손가락 하나 없더구나. 네 손에는 달랑 인형 한 개뿐이었다. 엄마는 그냥 긴 종이상자, 그것도 속이 비어 있는 상자 하나를 들었을 뿐이었다. 너는 계속 엄마에게 도와주겠다, 같..
2014년 여덟 살 # 새해 프로젝트 2013년 마지막 날 조촐한 파티에서 네 새해 소망을 들었다. "나도 잘할 테니까 혹시 내가 잘못해도 엄마·아빠가 화내지 않는 '친절한 가족'이 됐으면 좋겠어." 갑자기 무슨 서러운 기억이 떠올랐는지 펑펑 울었다. 엄마·아빠 마음 아는데 그렇게 얘기해서 또 미안하다니 무슨 아이답지 않은 배려인가 했다. 괜히 숙연해졌단다. 올해 우리 가족 프로젝트는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친절한 가족'이다. 올해도 잘 해보자. # 질투 새해를 맞아 네가 손수 만든 연하장을 공개했다. to mom and dad Happy new year! 이렇게 달랑 두 줄인데 마음이 한없이 풍요로워졌다. 그나저나 엄마·아빠 부르는 순서를 정한 근거나 기준이 궁금했다. "왜 맘 앤 대드야, 대드 앤 맘이면 안 돼?" "왜..
2015년 아홉 살 # 보라색 보라색을 좋아하는 사람이 섹시하다는 얘기는 어디서 들었을까? 아빠 안경테에 은은하게 깔린 보라색을 보면 알겠지만, 아빠가 보라색을 좋아한다는 말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데 너는 꺽꺽 넘어가며 웃었다. "아빠, 안 섹시해!" 너는 그렇다 치고 네 엄마는 왜 같이 웃을까? # 면박 친구 집에 놀러 갔다더구나. 친구 엄마에게 딸을 잘 부탁한다고 전화하는 게 엄마가 생각하는 예의다. "집이 엉망이라 예지가 놀랄지도 몰라요." "우리 집도 항상 그래요. 신경 쓰지 마세요." 그런데 너는 친구 집에 들어서자마자 마주친 친구 아빠에게 아주 큰 면박을 줬더구나. "아저씨, 집이 왜 이래요? 이거 참." 일단 지난 주말에 청소하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 고자질과 신고 "고자질이 나쁜 거야?" 네 ..
2016년 열 살 # 라면 냉장고 채소를 모두 동원했다. 살릴 것은 살리고 버릴 것은 버렸다. 끓는 물에 아낌없이 무를 넣었다. 한참 끓이다 양파와 애호박도 넣었다. 깊은 맛이 눈에 보이고 코를 찌르더구나. 낮잠을 자다가 깬 네가 짜증 가득한 얼굴로 식탁에 앉았다. 국물을 살짝 맛보더니 환한 표정에 콧소리까지 섞어 한마디 하더구나. "아빠, 국물이 진짜 깊고 맛있어요." '엄지 척'은 보너스니? 네 감상이 깊고 맛깔나구나. 아빠가 만든 라면이 다 그렇단다. # 감기 열이 갑자기 38도를 넘어 깜짝 놀랐다. 어쩐지 상태가 좀 그렇다 싶더니. 병원에 가는데 영 힘이 없어 보였다. 어떻게든 힘을 좀 주고 싶었다. "예지, 아프니까 공부나 방학숙제는 못 하겠네. 혹시 할 수 있겠어?" "아빠, 전에 항상 얻는 게 있으면 잃는 게..
2017년 열한 살 # 배웅 새해 첫날부터 당직까지 걸려 일찍 나가게 됐다. 급하게 나가는데 화장실에서 네가 나오더구나. "회사 가?" "응, 일찍 일어났네." "잘 다녀와. 사랑해." "아빠도 사랑해." 공중으로 날려 보내는 네 키스를 미쳤다고 피하겠니. 이렇게 부녀가 달달한 대화를 나누는 중에도 엄마는 주무시는 중이었다. 아내 빈자리를 딸이 채운다는 게 이런 것인가 싶었다. 저녁에 보자. # 인라인 스케이트 방학 동안 네가 하고 싶은 것을 뭐 하나 제대로 한 게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큰 자전거로 바꿔주지도 않았고 아이스링크에 가서 스케이트를 타지도 않았지. 그렇다고 가족이 여행을 다녀온 것도 아니고. 대놓고 투정을 부리지는 않았지만 소멸되는 방학을 아쉬워하는 모습이 딱했다. "예지, 인라인 스케이트 살까? 자연스럽게 ..
2018년 열두 살 # 12살 아빠 어릴 적 이라는 미국 드라마가 있었다. 어른 보기에 그냥 꼬맹이지만 스스로 알 것 다 안다 생각하는 주인공을 다룬 성장기였다. 제목 때문인지 12살은 어쩐지 다른 의미로 다가오네. 2018년을 맞아 12살 딸을 보는 감상을 추억과 버무려 엄마에게 얘기했더니 이렇게 분위기를 깨더구나. "미국 나이로 12살이면 우리 나이로 13살 아닌가?" 따지고 보면 말은 맞지. 아빠 추억과 딸이 한 살 더 먹은 의미를 한 번에 날릴 정도로 대단한 사실인지는 모르겠다만. 어쨌든 늘 그렇듯 올해도 응원한다. # 검도 운동 부족을 걱정해 시작한 검도가 나름 재밌나 보구나. 칼 없이 기본동작을 하며 '머리'를 외치는 모습이 멋졌다. '조선제일검'은 됐고, 살면서 한 번쯤 위기를 벗어날 수 있는 재주 정도는 됐으..
2019년 열세 살 # 나무 사다리 차를 고정시키는 다리 밑에 두꺼운 나무 블록을 까는 게 신기했니? "아빠, 왜 나무를 깔까. 쇠가 더 단단할 텐데." "나무는 단단한 것 중에 가장 부드럽고 부드러운 것 중에 가장 단단하거든." 알듯 말듯하면서 아는 척 끄덕이는 게 엄마 닮았구나. 아빠 답이 꽤 우아하지? # 반지 엄마가 주섬주섬 폐물을 챙겼다. 귀금속 몇 개를 맡겨 새 목걸이를 만들겠다는구나. 하나는 중학생이 되는 네 사촌언니, 나머지 하나는 너를 주겠다네. 결혼 전 끼었던 커플링이 있어 오랜만에 손가락을 넣었더니 감회가 새롭더라. 금은방에서 이런저런 귀금속 조합으로 가격을 맞추더구나. 팔찌, 반지, 귀걸이 등을 감정받으며 새로 만들 목걸이 가격에 다가갔지. 제법 차액이 난다 싶더니 엄마 눈 속 포인터가 아빠 손가락을 ..
2020년 열네 살 # 약한 쪽과 맞는 쪽 다른 고구마를 두고 굳이 엄마가 자기 먹기 좋게 자른 고구마를 아빠가 냉큼 집어 먹으면서 시작한 커뮤니티 댓글 같은 공방은 점점 유치하게 진행됐다. 보다 못한 네가 엄마를 거들더구나. "예지, 딱 봐도 아빠가 지금 엄마보다 약한 게 보이지 않아?" "보여." "그러면 약한 사람을 도와야지 왜 센 사람을 도와? 섭섭해." 한참 어이없이 웃던 네가 곧 표정을 수습하며 이렇게 매듭짓더구나. "왜 약한 쪽을 도와? 맞는 쪽을 도와야지." # 엄마 분석 "사실 자기도 자기 마음을 잘 모르는데 옆에서 마음에 드는 뭔가를 말해주길 기다렸다가 그게 아닌 다른 말을 하면 자기 마음을 몰라준다고 말하는 게 아닐까?" 엄마는 왜 말을 애매하게 해놓고 못 알아들으면 자기 마음을 몰라준다고 하는지 모르겠..
2021년 열다섯 살 # 러브하우스 2021년 새해를 청소로 시작한다. 치우고 정리할 보금자리가 있다는 게 새삼 좋다. 집주인이 따로 있다는 하찮은 사실 따위는 잠시 잊자. 엄마는 꽤 오래전부터 네 방을 말끔하게 정리하고 싶어 하더구나. 작은 공간에 피아노와 가구를 구겨 넣었으니 보기에 늘 갑갑했나 보다. 민원을 받고 틈나는 대로 머릿속에서 배치를 반복했다. 옮기는 게 피아노, 침대, 옷장, 화장대이니 작은방인데도 드는 일품이 만만찮았다. 그래도 흐뭇한 표정을 감추지 못하는 엄마와 입을 다물 줄 모르는 너를 보니 뿌듯하구나. 게다가 '러브하우스' 리액션(아빠가 옆에서 '따라 따라따~' 음악을 흥얼거리면 손으로 눈을 가리고 방에 들어왔다가 손을 내리면서 아주 깜짝 놀라는 척하며 환호하는 연기)을 아주 완벽하게 재연해 더 좋았다..
2022년 열여섯 살 # 북유럽 감수성 오늘부터 방학이라니 부럽구나. "네 방학 만 원에 하루씩 사면 안 될까?" "싫어." "왜? 만 원이 적어?" "그게 아니라 무슨 휴식을 돈으로 계산하려고 해?" 괜히 북유럽 감수성 같아서 마음에 들었단다. # 코로나19 열이 38도를 넘어 39도를 넘보기에 깜짝 놀랐다. 드디어 올 게 왔나 싶더라. 그런 시절이지 않니. 가까운 호흡기 클리닉 병원을 가면서도 오만 생각이 다 들었다. "거기 서세요." 2미터 정도 거리에서 의사 선생님이 지시했다. 낯선 원거리(?) 진료가 괜히 걱정을 더 키우더구나. 몇 가지 절차를 거쳐 신속 검사를 진행했다. 2분 먼저 음성 결과를 받은 네 표정이 평화롭더라. 열 없는 아빠 역시 음성으로 나왔다. 결과를 확인하자 의사 선생님도 가까이 오라더구나. "정말..
안내 │지역신문과 뉴미디어 관점으로 풀어 본 뉴미디어 이야기입니다. 2019~2022년 관련 업무를 담당하면서 정리한 내용입니다. │ 유럽 저널리즘 보고서 전국언론노동조합(위원장 오정훈)이 꾸린 해외현장조사사업단에 참여했습니다. 2019년 9월 29일부터 10월 6일까지 프랑스-독일-영국-벨기에를 거치는 일정이었습니다. 지역신문 지분으로 참여한 만큼 지역신문 시선으로 서술한 보고서입니다. │ 지역신문 이야기 에서 일하면서 만지작거리는 고민을 두서없이 정리했습니다. │ 이예지 양에게 딸이 자라는 모습을 보면서 접한 경이로운 일상을 끄적거렸습니다. 2007년 생인 딸의 6살부터 17살 초반까지 이야기입니다.
지역신문과 뉴미디어 - 에필로그 지난 글 모음 지역신문과 뉴미디어 - 프롤로그 지역신문과 뉴미디어 (1) 디지털 시대 그리고 콘텐츠 지역신문과 뉴미디어 (2) 외면받는 것에 담긴 가치 지역신문과 뉴미디어 (3) 경남도민일보 뉴미디어부 지역신문과 뉴미디어 (4) 기획과 업무 지역신문과 뉴미디어 (5) 분업과 협업 그리고 결핍 '보글보글(Bubble Bobble)'은 참 기특한 게임입니다. 방울을 쏴서 괴물을 가둬 터뜨리는 공격 방식, 사탕으로 업그레이드하는 무기, 귀여운 캐릭터 디자인, 2인 동시 플레이, 100개나 되는 스테이지, 퍼즐, 숨겨진 방, 보너스를 모으는 과정 그리고 중독성 강한 배경 음악까지 들여다볼수록 경이롭습니다. 이 모든 요소를 고작 185KB(킬로바이트) 용량에 담았습니다. 무려 1986년에 제작한 게임입니다. 18..
지역신문과 뉴미디어 (5) 분업과 협업 그리고 결핍 지난 글 모음 지역신문과 뉴미디어 - 프롤로그 지역신문과 뉴미디어 (1) 디지털 시대 그리고 콘텐츠 지역신문과 뉴미디어 (2) 외면받는 것에 담긴 가치 지역신문과 뉴미디어 (3) 경남도민일보 뉴미디어부 지역신문과 뉴미디어 (4) 기획과 업무 사회부 기자가 기자회견을 취재하고 사진기자가 현장을 찍습니다. 협업입니까, 분업입니까? 취재기자가 출고한 기사로 편집기자가 신문을 제작합니다. 협업입니까, 분업입니까? 행사에서 취재기자가 찍은 영상을 뉴미디어부 기자가 편집해 출고한 기사에 붙입니다. 협업입니까, 분업입니까? 2002년 입사하고 첫 취재를 나갈 때 받은 지시가 있습니다. "사진 챙겨라. 기자는 글만 쓰는 게 아니라 사진도 찍어야 된다." 그래서 받은 게 16메가(기가 아닙니다) 저장장치를 넣은 300만..
지역신문과 뉴미디어 (4) 기획과 업무 지난 글 모음 지역신문과 뉴미디어 - 프롤로그 지역신문과 뉴미디어 (1) 디지털 시대 그리고 콘텐츠 지역신문과 뉴미디어 (2) 외면받는 것에 담긴 가치 지역신문과 뉴미디어 (3) 경남도민일보 뉴미디어부 경남도민일보 뉴미디어부가 정기적으로 생산하는 콘텐츠는 다음과 같습니다. 그래도 잊지 마십시오. 뉴미디어부가 뭘 하든 현재 주요 업무는 경남도민일보 홈페이지와 SNS 관리입니다. 전체 업무 시간의 40~60%에 해당하는 일입니다. 신문을 제작하는 편집국 업무는 크게 '없는 것을 만드는 일'(취재)과 '만든 것을 가공하는 일'(편집)로 나눌 수 있는데 뉴미디어부 업무는 양쪽 모두 해당합니다. 보람도 있고 그만큼 스트레스도 비례합니다. 뉴미디어부 주요 콘텐츠를 소개합니다. 1) 지역 친근 시사방송 '오디오 맥도..
지역신문과 뉴미디어 (3) 경남도민일보 뉴미디어부 지난 글 모음 지역신문과 뉴미디어 - 프롤로그 지역신문과 뉴미디어 (1) 디지털 시대 그리고 콘텐츠 지역신문과 뉴미디어 (2) 외면받는 것에 담긴 가치 경남도민일보 뉴미디어부 인원은 3명입니다. 지금 구성원은 2020년 1월부터 유지하고 있습니다. 뉴미디어부 주요 업무는 홈페이지(idomin.com)와 SNS 관리입니다. 온라인에서 어떤 방식으로든 경남도민일보를 접했다면 모두 뉴미디어부 작업을 거쳤다고 보면 됩니다. 그렇더라도 이 작업은 신문 제작 업무 연장선입니다. 당연히 새로운(new) 게 아닙니다. 2019년부터 '뉴미디어'를 깔고 시도한 각종 작업을 따로 언급하지 않겠습니다. 딱히 내세울 만한 성과가 없습니다. 성과 말고 과정에 애써 의미를 부여하자면 할 말이 없지는 않으나 그 정도 서사야 다른 ..
지역신문과 뉴미디어 (2) 외면받는 것에 담긴 가치 지난 글 모음 지역신문과 뉴미디어 - 프롤로그 지역신문과 뉴미디어 (1) 디지털 시대 그리고 콘텐츠 이제 지역신문 이야기입니다. 지역과 신문, 디지털 시대에 가장 외면받는 조합 아닙니까? 지금은 정보를 넘어 원하는 제품조차 외국 마켓에서 직접 구입하는 세상입니다. 지역은 나와 가장 밀접한 세계가 아닙니다. 오히려 가까이 있기에 가장 하찮은 세계처럼 보이기 십상입니다. 심지어 성장을 가로막는 걸림돌 취급도 받습니다. 사람도 기업도 지역을 떠납니다. 지역과 지역신문이 겪는 위기 지역이 기반인 지역신문이 무슨 통뼈일 리 없습니다. 지역 현실과 지역신문 현실은 따로 놀지 않습니다. 앞서 디지털 시대 콘텐츠 생산과 소비 특징을 언급했습니다. 지역신문이 고전하는 이유는 쉽게 드러납니다. 지역신문은 정보를 독점하지도..
지역신문과 뉴미디어 (1) 디지털 시대 그리고 콘텐츠 지난 글 모음 지역신문과 뉴미디어 - 프롤로그 신문 처지에서 디지털 시대 시작은 언제일까요? 생산 과정이 디지털 기기로 바뀌는 시기라면 1980년대 말부터 1990년대 초 정도로 어림잡습니다. 뉴스 소비 도구가 디지털 기기로 바뀌는 시점이라면 1990년대 중반에서 모바일 기기가 대중화되는 시기 사이가 아닐까 싶습니다. 하지만 '디지털 시대'에서 디지털 의미를 도구로 제한하는 것은 너무 협소합니다. 디지털 시대 디지털 시대 이전까지 정보 흐름과 전달 과정은 일방적이었습니다. 정보를 독점하는 주체, 이를 모아서 확산하는 주체가 있습니다. 이들이 골라낸 정보를 소비자는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전신기 - 전파 - 라디오 - TV - 인터넷 등 정보 생산·소비 수단이 더욱 빠르고 정교해지는 과정에서도 일방성..
지역신문과 뉴미디어 - 프롤로그 2019년 1월부터 경남도민일보 뉴미디어부 업무를 시작했습니다. 그동안 마주친 고민, 이를 풀어내는 과정을 정리하고자 합니다. 큰 흐름 앞에 무력한 자신을 바라보는 시간이 유쾌하지는 않습니다. 그나마 성과를 강요하지 않고 과정에 관대한 조직, 낯선 일 앞에 머뭇거리지 않는 동료가 있어 부족한 깜냥을 잠시 잊곤 합니다. 큰 복이라고 생각합니다. 2020년 경남도민일보 내부 게시판에 공유한 글을 다듬어 정리합니다. 디지털 시대를 먼저 이야기하겠습다만 디지털을 잠시 잊겠습니다. 온 세상이 디지털 아닙니까. 눈에 보이는 기기부터 보이지 않는 네트워크까지 현대인은 디지털 망에 갇혔습니다. 이미 디지털 밖에서 디지털을 볼 수 없는 처지입니다. 이제 디지털은 객체로서 사유하기 어려운 대상이 됐습니다. 그러니 잠시 잊..
지역신문 뉴미디어가 만드는 선거보도 전형 2020년 4월 10일 유튜브 경남도민일보 채널에 ‘부동층을 위한 투표 안내서’ 마지막 영상이 떴다. 2개월 남짓 진행한 21대 국회의원 선거 기획이 마침표를 찍는 순간이다. 편집국에는 뉴미디어부원 3명뿐이었다. 마음껏 환호하고 서로 격려했다. 시작부터 마무리까지 빈틈없는 협업이 빚은 결과물에 잠깐 취했나 보다. 꽤 오랜만에 느낀 기분이다. 퇴근하고 나서 함께 작업한 손유진·최환석 기자에게 메시지를 남겼다. “수많은 요청을 끝까지 빠짐없이 완벽하게 소화해 내 고맙습니다. 각자도 훌륭했고 팀워크도 더 바랄 게 없습니다. 무엇보다 지역언론 뉴미디어가 가야 할 방향이 무엇인가 고민하고 실현하며 결과를 확인하는 과정이 좋았습니다.” 선거 기획 고민을 제안한 첫 회의 날짜가 1월 21일이다. 첫 기획인 ‘총선 예..
재난이 된 한국 언론, 미래는 있는가 2020년 5월 8일 경남도민일보 창간 21주년 기획 코로나19 전후의 경남 (3) 기회를 걷어찬 언론의 미래 2020년 2월 21일 경남지역 첫 코로나19 확진자가 나온다. 합천군에 사는 확진자는 대구에서 감염된 것으로 확인됐다. 김경수 경남도지사는 21일 오전 10시 30분 첫 브리핑에서 양성 판정을 받은 확진자가 4명이라고 밝힌다. 행정과 함께 경남지역 언론도 코로나19 대응 체제로 들어간다. 추가 확진자와 동선 정보를 비롯한 코로나19 관련 뉴스는 노출하기 무섭게 소비됐다. 첫 확진자가 발생한 2월 21일부터 5월 6일까지 경남도민일보 기사 조회 수 상위 100위 가운데 87건이 코로나19 관련 보도다. 누적 조회 수도 다른 분류 기사를 압도한다. 코로나19는 어느 때보다 뉴스 소비자 눈길을 기성..
유럽 저널리즘 보고서(5) - 가짜 뉴스와 연대 벨기에 수도 브뤼셀에서 받은 세련된 인상은 자동차 때문일 듯합니다. 프랑스·독일·영국은 세계적인 자동차 기업을 보유한 국가입니다. 하지만, 정작 파리와 베를린, 런던 도로를 메운 대부분 차는 작고 외관이 초라합니다. 반면 브뤼셀 거리에서는 훨씬 크고 깔끔한 유명 고급차와 쉽게 마주칩니다. 유럽연합(EU)·북대서양조약기구(NATO)·서유럽연합(WEU)·세계관세기구(WCO) 등 국제기구가 몰려 있는 이곳은 유럽연합 주요 정책을 결정하는 심장입니다. 높은 소득 수준은 도로에서도 드러납니다. 국제기자연맹(IFJ)도 이곳에 있습니다. 가짜 뉴스 규제? 가짜 뉴스(fake news)는 거짓으로만 채운 뉴스가 아닙니다. 아주 작은 사실을 걸친 뉴스입니다. 하찮은 사실이 거대한 왜곡으로 이어지면서 가짜 뉴스 부작용은 ..
유럽 저널리즘 보고서(4) - Two source rule 유럽 미디어와 저널리스트가 성취하는 저널리즘을 조금이라도 가까이서 느끼고 싶었습니다. 물론 그들도 저널리즘 위기를 인식하며 '우리 때는 그러지 않았는데'를 이야기하고 유튜브와 구글을 두려워하면서 저널리스트로서 사명감과 현실 사이 괴리감을 토로했습니다. 영국 런던에서 첫 일정은 BBC입니다. 수많은 인원이 분주하게 움직이며 각자 업무를 유기적으로 진행하는 거대한 뉴스룸은 규모부터 압도적이었습니다. SF영화에서나 보던 거대한 함정 속 장면이 떠올랐습니다. 압도당하지 않았다면 거짓말이거나 허세일 것입니다. 다행히 BBC 저널리스트인 칼(Carl Joseph) 씨가 무거운 현실 영역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는 고민을 던졌습니다. "요즘은 BBC에 들어와도 현장에 나가는 특별한 경험이 잘 제공되지 않는다. 젊은 구성..
유럽 저널리즘 보고서(3) - 다양성 보장과 획일성 차단 가이드는 베를린이 독일과 다르다는 점을 거듭 강조했습니다. 베를린에서는 독일 내 다른 도시와 사람들에게서 엿보이는 보편적 특성을 좀처럼 마주하기 어렵다고 합니다. 다양한 문화가 뒤섞인 젊고 활기찬 곳이라는 설명도 이어졌습니다. 개념을 잘 모르지만 많은 사람이 하는 말을 빌리면 힙(hip)한 곳입니다. 물론 하루도 채 머무르지 못한 처지에서 느낄 영역은 아니겠습니다. 프랑스와 독일 신문, 특히 지역신문은 같은 매체 사이에서 모범 사례로 종종 언급됩니다. 카페에 앉아 신문을 읽는 유럽인을 상상하면서 이들 일상에서 신문은 뭘까, 어떤 영감을 얻을 수 있을까 기대했습니다. 하지만, 단 한 번도 신문을 읽는 사람과 마주치는 일은 없었습니다. 머물렀던 호텔 로비나 편의점에 있는 신문은 처음 놓인 그 자리에서 좀처럼..
유럽 저널리즘 보고서(2) - 노란 조끼 운동 프랑스 노동조합 가입률은 6% 정도입니다. 도미니크(Dominique Pradalie) 프랑스 기자 노조(SNJ) 대외협력담당 부위원장이 상대적으로 높은 기자 노조 가입률(약 10%)을 언급하면서 밝힌 수치입니다. 물론 이 수치를 우리가 프랑스보다 노조 활동이 활발하다는 근거로 삼으면 매우 곤란합니다. 앞서 언급했지만 한 사회가 지닌 역량을 입체적 분석 없이 단정 짓는 것은 위험합니다. 고작 며칠 동안 그 함정에 자주 빠졌습니다. 프랑스는 산별협약이 단체협약효력확장·확대제도를 거쳐 대부분 노동자가 협약을 적용받는 구조입니다. 노조에 가입하지 않아도 높은 수준으로 단체협약 혜택을 누릴 수 있습니다. 원래 노조 조직률은 낮지만 협약 적용률은 높은 사회입니다. 도미니크 씨가 주목하는 것은 위축되는 노조 활동 ..
유럽 저널리즘 보고서(1) - 시라크 관을 덮은 천 전국언론노동조합(위원장 오정훈)이 꾸린 해외현장조사사업단에 참여했습니다. 9월 29일부터 10월 6일까지 프랑스-독일-영국-벨기에를 거치는 일정이었습니다. 각 나라 노동조합과 정부 기관 등을 방문해 △제작환경 △고용구조 △미디어 정책 현황 등을 확인했습니다. 앞선 체계를 학습하면서 체감하는 기회였습니다. 상대적으로 신문 시장 사정이 낫다는 유럽에서 영감을 얻을 수 있겠다는 기대도 있었습니다. 저는 지역신문 지분으로 참여한 만큼 이 보고서를 지역신문 시선으로 서사하겠습니다. 성과를 따진다면 자신하기 어렵습니다. 짧은 기간 빠듯한 일정에서 살뜰하게 소득을 뽑아내기에는 소양과 역량이 부족한 탓입니다. 그저 편견 없이 주섬주섬 모은 조각 하나가 어떤 그림을 완성하는데 보탬이 되는 행운이 있기를 바랍니다. 9월 ..
에필로그 영화 에서 주인공은 입양한 아들과 동네야구를 보러 갑니다. 야구를 처음 본다는 아이에게 아빠는 야구가 좋은 점을 설명합니다. "야구가 좋은 이유가 뭔지 아니? 열 개 중에 세 개만 쳐도 스타가 된다는 거야. 그것보다 조금만 더 잘 치면 슈퍼스타지." 이 대사를 접하고 삶이 한결 풍요로워졌습니다. 블로그 제목인 '3할이면 훌륭하다'는 말도 여기서 나왔습니다. 열 번 시도해서 세 번, 괜찮지 않습니까? 3할이 위대한 이유는 열 번 이 악물고 덤벼도 세 번 쳐내기가 어렵기 때문입니다. 일곱 번에 걸친 의미 있는 실패가 쌓여야 가까스로 세 번을 칠 수 있습니다. 그저 방망이만 열 번 휘두른다고 공이 세 번 걸리는 일은 없습니다. 잘 맞은 공이 수비수 정면으로 가서 잡히기도 하고, 빗맞은 공이 어중간한 곳에 떨어..
#10. 저널리즘과 지역신문 지역신문 존재 이유를 묻는다면 세 가지로 답합니다. △지역 권력 견제 △지역 정보 공유 △지역 커뮤니티 형성. 이전에 몰랐고, 앞으로 바뀔지 모르겠지만 지금 답은 이렇습니다. 돌고 돌아 다시 정리하면 '주체적인 시민과 함께 어깨 걸고 걷는 동반자'이고 싶습니다. 미디어 학자인 이선 주커먼(Ethan Zuckerman)은 이렇게 명료하게 정리했습니다. "언론이 시민에게 스스로 변화를 만든다는 느낌을 줄 수 있다면, 그들은 수년간 느끼지 못한 힘과 애정을 얻을 것이다." 다시 저널리즘을 생각합니다. 한때 부조리를 먼저 들추고 선언·확정하며 선동하는 게 저널리즘이 추구해야 할 가치이자 힘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지금 생각은 좀 다릅니다. 가짜 뉴스 덕에 더 깊게 고민하게 됐습니다. 앞서 가짜 뉴스를 이렇게 정의했..
#9. 수익과 지역신문 매체 생산자 처지에서 언급하는 위기는 아직 저널리즘보다 수익에 쏠리는 듯합니다. 부끄럽지만 현실입니다. 당장 지역신문만 봐도 광고·사업 매출이 해마다 완만한 오름세를 유지한다면 지금처럼 위기를 인식하지 않을 것입니다. 먹고사는 문제에 큰 지장이 없다면 일상적으로 본질을 고민하기 어렵습니다. 그런 면에서 매체가 겪는 위기는 저널리즘을 회복하는 기회일 수 있습니다. 모두 얻는 법은 없듯, 모두 잃으라는 법도 없습니다. 전통적으로 매체는 소비자 규모를 앞세운 광고 유치와 광고 단가 키우기를 수익 모델로 삼았습니다. 신문을 공짜로 뿌리더라도 구독자 수를 확보하는 게 먼저입니다. 이를 바탕으로 광고주에게 안정적인 수익을 요구합니다. 가늠하기 어려운 매체 영향력을 근거로 내세워 거래 대상을 회유·압박합니다. 언론사..
#8. 매력과 지역신문 연작을 본 게 20여 년 전입니다. 내용은 가물가물합니다. 어떤 장면은 에서 봤는지 에서 봤는지 헷갈립니다. 그래도 그때 받은 매력적인 인상은 여전합니다. 영화 포스터와 주인공은 지금 봐도 세련됐습니다. 지역신문이 사는 길이 어느 쪽이든 출발 지점은 같습니다. 매력적인 매체가 돼야 합니다. 애정이나 신뢰는 구걸로 얻는 게 아닙니다. 앞서 경쟁 상대로 NC 다이노스를 지목했습니다. NC 다이노스 역시 창원시민에게 연고지를 내세우기에 앞서 매력적인 팀이 되는 게 과제일 것입니다. 성적, 팬서비스, 시설, 경기 성향, 스타 등이 매력을 구성하는 조건입니다. 매력 없는 신문 현실은 쉽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최근 몇 년 동안 통계를 보면 뉴스 소비는 꾸준히 늘고 있습니다. 소비자는 어떤 방식으로든 - 포털 영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