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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널리즘 journalism/지역신문

#2. 라디오와 지역신문

1979년 영국 그룹 버글스는(The Buggles)는 "비디오가 라디오 스타를 죽였다(Video Killed the Radio Star)"라고 노래했습니다. 모르기는 해도 TV 대중화는 라디오에 한 발이라도 걸친 모든 산업에 큰 위기로 다가왔을 것입니다. TV가 라디오 스타가 아닌 라디오 자체를 죽인다고 생각하지 않았을까요?

 

라디오는 건재합니다. TV 시대를 넘어 뉴미디어 등장으로 TV 위상이 추락한 지금도 라디오는 자기 지분이 있습니다. 라디오 스타는 죽었는지 몰라도 라디오는 잘 살아남았습니다. 오히려 특정할 수 없는 어떤 미래 시점까지 가장 오래 남을 매체가 라디오 아닐까 싶습니다.

 

라디오를 이미 망한 매체로 지목하던 시기도 있었습니다. 영상에 취한 소비자에게 외면받을 것이라는 예상은 그렇게 어렵지 않았습니다. 소비자가 떠나면 광고도 떠납니다. TV보다 더한 인터넷 시대에 접어들자 비관은 더 깊어집니다. 놀랍게도 이 시기에 신문은 라디오를 동정했을지언정 자신에게 닥친 위기는 감지하지 않은 듯합니다. 지나고 보니 자기 개성에 몰입했고, 자신감이 지나쳤으며, 취재원에게 갇히면서 정작 소비자에게 오만했습니다. 존중받던 과거에 배인 돼먹지 못한 습관은 무시받는 오늘까지 남아 혐오 대상이 되고 있습니다.

 

 

"들어주는 게 아닙니다." @영화 <라디오스타> 

 

그나저나 라디오는 어떤 변화를 겪었을까요. 잘 모릅니다만 소비자(청취자)를 대하는 태도에 주목합니다. 라디오는 기성 매체 가운데 가장 소비자 친화적인 매체입니다.

 

소비자 친화적, 소통 등을 언급하면 나오는 반응이 있습니다. 할 수 있는 만큼은 한다는 것입니다. 독자 투고, 기사 댓글을 떠올릴지 모릅니다. SNS로 독자와 적극적으로 소통하는 기자도 있습니다. 여러 가지 방식이 있겠지만 '들어준다'는 태도 면에서 크게 다를 게 없습니다. 라디오가 TV나 신문보다 우월한 면은 콘텐츠 생산 과정에서 소비자 요구를 더 적극적으로 수용한다는 점입니다. 소비자 의견을 취합하고 솎아내 제작에 반영하는 게 아닙니다. 소비자 역시 생산 과정에서 적극적인 주체로 참여한다는 점입니다. 뉴미디어 영역에서는 탁월하게 활발한 지점입니다.

 

신문은 물리적으로 그런 소통 방식이 불가능하다는 반박을 예상합니다. 맞습니다. 전날 만들어서 다음날 배포하는 신문에는 '실시간'이라는 개념을 적용하기 어렵습니다. 소비자가 생산에 개입하는 길을 가장 좁습니다. 그러면 어떻습니까. 라디오가 소통을 라디오로 합니까? 청취자가 방송 참여를 라디오로 하는 게 아닙니다. 신문이 지닌 장점을 신문 그 자체로 보존하고 싶다면 태생적인 약점은 다른 방식으로 보완해야 합니다. 할 수 있느냐 없느냐 문제가 아닙니다. 할 생각이 있느냐 없느냐 문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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