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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널리즘 journalism/지역신문과 뉴미디어

지역신문과 뉴미디어 - 프롤로그

2019년 1월부터 경남도민일보 뉴미디어부 업무를 시작했습니다. 그동안 마주친 고민, 이를 풀어내는 과정을 정리하고자 합니다. 큰 흐름 앞에 무력한 자신을 바라보는 시간이 유쾌하지는 않습니다. 그나마 성과를 강요하지 않고 과정에 관대한 조직, 낯선 일 앞에 머뭇거리지 않는 동료가 있어 부족한 깜냥을 잠시 잊곤 합니다. 큰 복이라고 생각합니다. 2020년 경남도민일보 내부 게시판에 공유한 글을 다듬어 정리합니다.

 

 

디지털 시대를 먼저 이야기하겠습다만 디지털을 잠시 잊겠습니다. 온 세상이 디지털 아닙니까. 눈에 보이는 기기부터 보이지 않는 네트워크까지 현대인은 디지털 망에 갇혔습니다. 이미 디지털 밖에서 디지털을 볼 수 없는 처지입니다. 이제 디지털은 객체로서 사유하기 어려운 대상이 됐습니다. 그러니 잠시 잊겠습니다. 어차피 오래 벗어나지는 못할 것입니다.

 

 

 

1864년 미국, 17세 소년이 한 전신회사에 입사합니다. 길고 짧은 전기 신호만으로 거리 한계를 넘어 정보를 전달하는 기계에 푹 빠진 소년입니다. 요즘 말로 전신기에 '덕질'하던 소년이 전신회사에 취직했습니다. 1분 안에 모스 신호로 들어온 단어를 처리하는 분량이 곧 전신기사 능력이었습니다. 소년은 속도와 정확도에서 단연 돋보였습니다. 당시 신문은 이런 식으로 들어온 정보를 받아 기사를 작성해 발행했습니다. 가장 빠른 교통수단이 철도였던 1860년대 미국입니다. 남북전쟁 시기 버지니아 주에서 벌어진 전투 결과를 1000㎞ 떨어진 보스턴에서 반나절 안에 신문으로 읽는 사람들에게 정보는 어떤 것이었을까요. 1864년 조선에서는 고종이 즉위합니다.

 

그나저나 최신 정보를 가장 빠르게 접할 수 있던 이 소년이 미디어 사업에 눈을 떴으면 어땠을까요? 잠깐이지만 소년은 정보가 도착하는 시간 차를 이용한 신문팔이에 잠시 흥미를 느끼기도 했습니다. 이쪽 분야로 갔어도 꽤 훌륭한 수완을 발휘했을 것입니다. 대신 전구나 축음기는 한참 뒤에 나왔을 것입니다. 이 소년 이름은 '발명왕' 에디슨(Thomas Alva Edison)입니다.


뉴미디어가 뭘까요? 팟캐스트, 유튜브, SNS, 인포그래픽, 인터랙티브… 뭘까요?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우리는 신문과 지상파 방송(TV·라디오)이 '뉴미디어가 아니라는 것'(올드미디어) 정도는 쉽게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복잡하게 고민하지 말고 뉴미디어는 '올드미디어가 아닌 것' 정도로 퉁칩시다. 대신 한 가지 고민은 해야 합니다. '올드미디어가 아닌 것'이면 뉴미디어로서 가치가 있는 것일까? 당연히 아닙니다. 올드미디어 한계를 극복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인터넷이 터지지 않는 곳에서 유튜브는 신문이나 라디오보다 후진 매체일 뿐입니다. 어떤 수단이 뉴미디어를 규정할 수 없다고 정리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