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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지 to ye-ji

2019년 열세 살

# 나무

사다리 차를 고정시키는 다리 밑에 두꺼운 나무 블록을 까는 게 신기했니?

"아빠, 왜 나무를 깔까. 쇠가 더 단단할 텐데."
"나무는 단단한 것 중에 가장 부드럽고 부드러운 것 중에 가장 단단하거든."

 

알듯 말듯하면서 아는 척 끄덕이는 게 엄마 닮았구나. 아빠 답이 꽤 우아하지?



# 반지

엄마가 주섬주섬 폐물을 챙겼다. 귀금속 몇 개를 맡겨 새 목걸이를 만들겠다는구나. 하나는 중학생이 되는 네 사촌언니, 나머지 하나는 너를 주겠다네. 결혼 전 끼었던 커플링이 있어 오랜만에 손가락을 넣었더니 감회가 새롭더라.

금은방에서 이런저런 귀금속 조합으로 가격을 맞추더구나. 팔찌, 반지, 귀걸이 등을 감정받으며 새로 만들 목걸이 가격에 다가갔지. 제법 차액이 난다 싶더니 엄마 눈 속 포인터가 아빠 손가락을 향했다. 아쉽지만 뺄 수밖에 없었다. 제법 좋은 가격으로 쳐주더구나. 돈이 얼마 남기까지 했으니. 아빠 몫 현금을 셈하려는 순간 엄마가 말하더라.

"데일리로 할 귀걸이 좀 보여주세요."

결국, 너와 네 사촌언니는 목걸이를 하나씩 가질 것이고 엄마는 새 귀걸이를 하나 챙겼구나. 아빠는 반지 하나가 그냥 사라졌을 뿐이다. My PRECIOUS!!!



# 잠자리

혼자 자기 무섭다며 안방에 말뚝 박은 네가 빠질 생각을 않는구나. 사생활 침해를 길게 따지지는 않겠다. 새벽에 엄마 팔꿈치로 이마를 살짝 가격 당하는 바람에 잠시 깼다. 침대에서 내려다보니 너는 방바닥을 구석구석 돌며 널브러졌더구나. 그나저나 누워 있는 것을 보니 그새 부쩍 컸다. 이제 6학년이니 뭐.

엄마는 자던 중에 팔꿈치에 찍혔다고 하니 아주 대수롭지 않게 넘기더라. 아프면 얼마나 아프겠느냐고. 아빠가 '할리우드 액션'을 했다는 것이지. 엄마 팔꿈치 가격, 아빠 할리우드 액션, 네 넓은 방바닥 공간 활용까지 우리 가족 잠자리 장면은 최근 국가대표 축구보다 다이내믹할 게 분명하다.



# 인센티브

주말 스마트폰 이용 시간을 4시간으로 제한할 때만 해도 네 표정은 어두웠다. 한 시간 적게 쓰면 1000원, 두 시간 적게 쓰면 2000원 주겠다는 인센티브에도 시큰둥했지. 말은 하지 않았지만 돈 일·이천 원에 가까스로 얻은 즐거움을 포기할 일은 없을 듯했다. 아빠 컴퓨터 모니터에 붙은 메모를 보기 전까지는 말이다.

"아빠~ 지난주 주말에 사용시간 1시간 남겼어요~ ㅋㅋ 1000원."

4시간을 쓰는 것보다 3시간 쓰고 1000원 받는 게 괜찮다는 계산이 섰나 보구나. 자본주의 사회에서 잘 다듬어야 할 자질이다.



# 소통

"친구가 암인데…"

아침부터 깜짝 놀랐다. 아빠가 '친구'와 '죽음'을 현실에서 한 개념으로 처음 묶었던 게 그래도 스무 살 때였으니 말이다.

"나는 잡덕이고 입덕은 아니라서. 그런데 친구가 방탄 이름 다 외우라고 하더라고. 내가 방탄을 싫어하지는 않는데 그렇게까지 할 일인가."

친구가 아미(A.R.M.Y)였고, 너는 아이돌을 두루 좋아하되 특정 아이돌에 꽂히지는 않았다는 말이구나. 잠깐 아찔했다. 이제 시작이겠지?



# 취향

엄마가 네 것이라고 산 옷이 썩 마음에 들지 않는가 보구나. 없는 살림에 고르고 골랐을 엄마 마음을 헤아리기보다 네 취향이 앞서는 것을 탓할 마음은 없다. 다행히 네 반응이 시원찮을 때 엄마가 예전처럼 그렇게 속상해하지도 않더구나. 마음이 넓어진 게 아니냐고? 설마. 그냥 별 고민 없이 자기가 바로 걸치고 다니더라. 너를 지금까지 키운 또 한 가지 보람이지. 그나저나 엄마가 애초부터 네 옷을 샀는지도 잘 모르겠다.



# 반수면

원래 기상 시간이 이른 아빠에 이어 네가 방에서 눈을 비비며 나오더구나. 오전 8시 30분.

"엄마는 일어났어?"
"절반쯤?"

눈은 뜬 것 같으면서 감겨 있고 말을 걸면 대꾸는 하는데 몸은 전혀 움직이지 않는 상태를 말하는 거지? 한 시간쯤 더 누워 있겠네. 좀 있다가 터벅터벅 방에서 나오면서 빵 먹자고 할 거야. 어떻게 아느냐고? 장사 하루 이틀 하나!



# 음주

네가 음주에 거부감을 드러내는 원인은 순전히 엄마일 테다. 아빠가 술 마실 때마다 엄마가 반기고 대화는 한결 부드러워지며 평소보다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 주곤 했다면 음주를 부정적으로 인식할 까닭이 없지. 그래서 환경이 중요하다.

어쨌든 무슨 술을 맨날 마시느냐는 엄마 질책에 크게 느끼는 바가 있어 매일 10시간 이상 금주하기로 했으니 딸은 그리 알라.



# 의문의 1패

처음 스마트폰 사용을 허락받았을 때 설렘을 어느새 잊고 조금 사용이 불편하다는 이유로 엄마에게 짜증을 냈다며? 엄마도 당연히 더 세게 받아쳤겠지. 나중에 너와 이 과정을 찬찬히 되짚지 않을 수 없었다.

"너에게 잘해 준다고 엄마 성격이 좋은 줄 아는가 본데 절대 아니다. 조심하라고."
"알겠어. 그런데 아빠가 그렇게 말하는 거 엄마 의문의 1패 아냐?"

날카롭구나. 해학과 풍자는 압제 그늘에서 더욱 빛나는 법이다.
 


# 아미

휴대전화 케이스에 붙인 잘생긴 남자 사진이 익숙하다 했더니 '방탄소년단' 멤버구나.

"너도 아미(army)니?"
"어."
"아빠는 뭔지 알아?"
"뭔데?"
"아미 애비(army's father)."

인정할 수도 부정할 수도 없는 네 표정과 안절부절한 모습에 잠시나마 BTS를 압도한 듯하여 뿌듯했다.



# 계란밥

설거지가 밀려 네 아침밥 챙기기에는 손이 부족했다. 계란밥을 메뉴로 정하고 당장 도움을 청했지. 계란 프라이부터 간장과 참기름 한 숟갈, 밥 한 공기 퍼는 것까지 어찌나 손끝이 야무지던지 시키는 내내 흐뭇했다. 한입 먹는 너를 보니 재밌는 대사가 떠오르더구나.

"예지, 그거 뭐지? 우리 엊그제 영화로 봤던 거."
"지금까지 이런 맛은 없었다. 이것은 그냥 밥인가 계란밥인가."

패러디 또한 아주 훌륭했다. 이런 점은 네 엄마도 좀 배우면 좋겠다.



# BTS 라이벌?

라이벌이 성장 과정에서 동력이 되는 것은 맞다. 뒤처졌을 때 견딜 내구력만 보장된다면 말이다. 세계를 무대로 뛰는 보이 그룹이 라이벌 하나 없을까. 각자 선망하는 그들을 지지하는 팬들 사이에도 분명히 경쟁심이 있을 것이다. 내 장점을 최대한 드러내고 단점은 감추면서 더 높은 곳을 향해 한걸음 내딛겠지. 그래서 물었다. BTS 라이벌이 누구냐고.


"없어."  

단호한 말투에서 너희 무리 결속력을 새삼 확인했다.



# 우편거래

서울에서 네 앞으로 온 우편물을 받았다. 무려 '등기'더구나. 나중에 네가 뜯은 봉투 속에는 '방탄소년단' 사진이 떡! 어쨌든 팬들끼리 우편 거래를 한 셈인데, 네가 대단한지 네 무리가 대단한지 모르겠다.

"3000원짜리 문화상품권 코드를 전해줬어요."

 

너희끼리 거래 방식이 있겠지. 돈은 조금 더 썼을지도 모르겠다. 혹시 아빠 놀랄까 봐 축소 보고했다면 괜찮다. 1만 원까지는 각오할게.



# 인싸

개학하자 바로 친구를 사귀었다니 꽤 놀랐다. 해마다 그 문제로 한참 고민했기에 올해는 어떻게 넘길까 걱정했거든.

"예지도 인싸네."

격려한답시고 네 또래들 표현을 써 봤다. 그나저나 네가 보기에 엄마·아빠는 '인싸'니 '아싸'니.

"인싸 같아. 친구가 많고 적은 게 문제가 아니라 주변에 좋은 사람만 있는 것 같아. 그리고 가끔 우리 집에 사람들도 모이잖아."

그래, 양보다 질이구나. 그리고 마치 우리 집을 제집처럼 여기고 막무가내로 사람 모으는 무지막지한 이모 덕에 인싸 됐다는 점도 새삼 인정해야겠다.



# 독서

"읽을 책이 별로 없어. 서점 갈까?"
"아빠 책 읽어도 돼."
"진짜?"
"아빠는 예지보다 더 어렸을 때부터 어른들 책 읽었는데 뭐."
"오!"

물론, 그때는 스마트폰이 없었단다.



# 재능

"아빠, 바나나 껍질로 스마트폰 터치가 돼요. 신기하네."

처음 듣는 얘기다. 그게 돼? 네가 수학에 취미가 없는 것은 이미 알았다만 과학에 재능이 있을 줄이야. 혹시나 해서 '바나나 껍질'과 '터치'로 검색했더니 그런 정보가 차고 넘치더구나. 이 지나치게 스마트한 세상 탓에 네가 지닌 스마트한 재능이 묻히는 듯해 아쉬웠다.



# 배신

친구 때문에 속상했다고. 얘기를 들어보니 그럴 만하더구나. 충분히 기분 나쁘고 속상한 일이며 그래서 눈물 흘려도 이해가 된다고 먼저 말한 것은 진심이다.

"오늘 속상하고 슬퍼도 이 경험 덕에 네가 다른 친구들에게 이런 기분을 느끼지 않게 하려고 노력할 게 분명하잖아. 네 성장에는 오늘 이 속상한 경험이 큰 도움이 될 거야. 아빠 말 믿어."

물론 상당히 진리에 가까울 게 분명한 이 말에는 그보다 더 큰 바람이 가득 담겨 있단다. 그나저나 그 녀석은 진짜!



# 차이

네가 초등학교 수학과 중학교 수학 차이를 아느냐고 물었을 때 떠올린 답은 뻔했다. 계산이 일단 어렵겠지. 난이도 정도 아니겠니?

"초등학교 수학은 '구하시오', '계산하시오' 이러는데 중학교 수학은 '구하라', '계산하라' 그런다."

정말이니? 사실이라면 참 중요한 발견이다. 문제 만드는 사람들이 새기고 또 새겨야겠구나.



# 자녀 탐구?

학교에서 너에 대한 문제를 부모 숙제로 냈더구나. △번호 △싫어하는 과목 △좋아하는 음식 등 10문제. 엄마는 6점 받았다며? 아빠가 7점 받아서 놀랐니? 엄마와 틀린 문제가 같다는 데서 새삼스럽게 전우애를 느꼈다. 하나 더 맞춘 문제가 같은 반 친구 중에 가장 친한 친구 이름이었잖아. 아빠가 그 이름을 읊었을 때 놀라는 네 반응이 모처럼 짜릿했다. 문제지 끝에 편지는 꽤 뭉클하더구나.

"엄마, 아빠. 저에 대해서 잘 알고 계신다면 이 문제들을 다 맞히셨을 수도 있어요. 하지만 다 맞지 못할 수도 있겠죠. 그래도 항상 제 얘기를 잘 들어주시고 좋은 조언을 많이 해주셔서 감사해요. 가끔은 친구 같고 때로는 선생님 같으신 엄마, 아빠가 정말 좋아요. 앞으로도 그렇게 제 이야기 많이 들어주시고 통쾌하게 해결해 주시면 감사할 것 같아요. 저도 1년 동안 실망 안 시켜드리려고 노력하는 멋진 학생이자 딸이 될게요. 티는 많이 안 내도 많이 사랑하는 거 아시죠?"

그나저나 아빠가 아는 네 가장 친한 친구 이름은 현재 아빠가 알고 있는 유일한 6학년 8반 친구이기도 하다. 무슨 시험이든 운도 필요하다.



# 험담

인간관계 설정이 쉽지 않다는 거 잘 안다. 그래도 너무 걱정하지 마라. 어른이라고 잘하는 영역이 아니다. 오히려 못하는 어른이 차고 넘친다. 여기저기서 험담하는 친구 본심이 궁금하다고? 궁금할 거 전혀 없다.

"네 앞에서 다른 친구 험담하는 애는 다른 친구 앞에서 너를 험담해. 그게 본심이고 실체야. 더 알 것도 별로 없어."
"그래, 아빠 말이 진짜 딱 맞는 게…"

미안한데 그 뒷말을 잘 못 들었다. 네가 너무 격하게 공감하니 잠깐 들떴나 보다.



# 공모

친구와 놀겠다고 나간 네가 저녁 먹을 시간이 돼도 들어오지 않아 전화했다.

"재밌게 놀았어? 저녁 먹을 시간 다 됐는데 이제 들어올래?"

아주 잠깐 정적이 흐르고, 곧 휴대전화 너머 들려오는 대화가 흥미로웠다.

"저녁 먹으라고 들어오라는데."
"먹었다고 하면 되지. 아까 뭐 먹었잖아."
"그럴까."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자연스럽게 통화가 이어지더구나.

"아빠, 저 저녁 먹었는데."
"뭐?"
"친구들이랑 라면 먹었어요."
"그래? 그러면 한 시간만 더 놀다가 들어와라. 다시 전화하지 않게 약속 지키고."
"네."

다음부터는 입 닿는 부분을 손으로 막고 작전을 짜도록.



# 경계

가끔 특별히 해를 끼치지 않아도 미움 사는 사람들이 있단다. 시답잖은 혐오가 확산하면서 이유 없이, 때로는 없는 이유도 만들어져 괴롭힘을 당하기도 하지. 시비를 가르기보다 가해자 무리에 섞일 때 오히려 안정을 느끼는 것은 사람 본성인 듯하다. 그 상황에서 무리를 경계하는 거? 어른들도 잘 못해.

"이상한 게 애들이 그 친구를 '양성애자'라고 놀리는 거야. 아니, 양성애자면 또 어때서? 무슨 피해를 주는 것도 아니고."

아빠가 무척 아끼는 네 능력이 반짝이는 순간이다. 참 자랑스럽다.



# BTS zone

"엄마, 책꽂이에 있는 4·5학년 때 책이랑 문제집 치워도 돼?"

정리는 버리는 것부터 시작한다. 시키지도 않았는데 먼저 나서다니 참 대견하구나. 책상에 너저분하게 쌓아두던 책도 이제 제자리를 찾겠네.

"그래서 책꽂이 정리하고 어떻게 했는지 알아?"

 

엄마가 낸 문제 답을 바로 확인하고 싶었다. 말끔하게 정리한 책꽂이 한 칸을 테마가 분명한 물건으로 채웠더구나. 그곳을 'BTS zone'이라고 한다며?



# 효녀

노동절 집에서 쉬는 엄마와 너는 일하는 아빠에게 외식하는 모습과 셀카 사진을 보냈더구나. 이 날이 빨간날이어야 하는 이유는 명확하다. 그나저나 셀카를 찍으면서 엄마를 살짝 뒤로 빼주는 센스는 멋졌단다. 효녀구나. 칭찬하지 않을 수 없어 문자를 보냈다.

"엄마 얼굴 작게 나오게 하는 쎈쓰!"

바로 답장이 오더구나.

"엄마가 뒤로 빠졌어요. ㅋㅋ"

 

# 동성애

개인적으로나 정치적으로나 동성애를 반대한다고 당당하게 밝히는 한 정치인 뉴스를 접하고 너에게 좀 집요하게 물었다.

"동성애를 찬성해 반대해?"
"그게 찬성하고 반대할 일이야? 알아서 사는 거지."

개인적으로나 정치적으로나 네가 훨씬 낫다.



# 이간질

이간질 일삼는 친구를 이해하기 어렵다고? 덩달아 욕하면 그저 흔한 좋은 아빠일 뿐이다. 훌륭한 아빠는 이런 순간을 놓치지 않고 인간 감정에 깔린 본질을 함께 탐구하거든.

"이간질을 왜 할까?"
"글쎄, 친구를 혼자 차지하고 싶어서?"

괜찮은 답이었다. 다만, 네 엄마가 아빠를 독점하려고 이간질을 하지는 않았다는 반례가 너무 분명해서 말이다. 어쨌든 남을 깎아내려야만 가까스로 자기를 증명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단다. 그 친구도 자기 매력을 믿는다면 뭐한다고 힘들게 이간질씩이나 하겠니?

"자신감? 자신감이 없어서?"

오늘 수업 끝.



# 막상막하

네 엄마와 말다툼을 하다가 밀릴 때면 그런 생각을 한다. 정순영과 정순영이 싸우는 모습을 한 번 봤으면 좋겠네. 다행히 사춘기를 맞은 네가 그런 숙원을 일부 해소해 주는구나. 분명히 엄마가 논리적으로 앞서건만 감정적으로 흔들리니 말이다. 파이팅!



# 초대

오후 2시 30분에 친구들 만나 영화 <엑스맨> 봤잖아? 저녁 먹고 들어온다고 해서 늦어도 8시까지 들어오라고 했지. 8시쯤 전화가 와서 또 무슨 수작인가 했다.

"아빠, 친구들이 우리 집에서 좀 더 놀자는데."
"집에서? 그렇게 하고 언제쯤 들어올 건데?"

전화가 끊기자마자 현관문 번호 키 누르는 소리, 바로 밀려들어오는 친구 3명. 안 된다고 했으면 욕 엄청 먹을 뻔했구나.



# 벌금

생각대로 뭔가 잘 풀리지 않았을 때 '에이 씨' 좀 한 게 뭐가 문제냐. 그게 훨씬 자연스럽다는 게 변함없는 아빠 생각이다. 네 엄마는 단호하게 아니라는구나. 그렇다고 욕에 주저함이 없는 아빠, 그런 아빠에게 어느 정도 배웠을 너에게 목소리 깔고 바른말 고운말을 강요할 수도 없고. 그냥 약속 하나 했잖아. 서로 욕 비슷한 거 하는 거 들키면 5000원 주기로.

지금까지 아빠가 -1만 5000원, 너는 0원이네. 어제 5000원을 건네면서 제발 시원하게 아빠에게 욕 좀 하면 안 되겠느냐고 물었지. 그냥 퉁치자고. 잽싸게 지폐를 낚아채며 말하더구나.

"딸에게 그런 거 시키는 아빠가 어딨어?"

어쨌든 그 뒤로 엄마에게 욕 관련 민원은 없어 다행이다.



# 표현

엄마가 야근하는 날은 네 야식 하는 날이구나. 그래도 먹고 싶은 것은 네 입으로 얘기해야지. 꼭 아빠가 이것저것 메뉴를 묻고 네가 고개를 끄덕일 때 주문하는 식이면 되겠니. 이번에는 아빠도 마음을 단단히 먹었다.

"뭐 먹고 싶어?"

역시 예상대로 답하지 않더구나. 그냥 밥이나 먹자며 밥솥을 설거지하는 것까지가 준비한 전략이었다. 수세미에 거품을 내니 다급한 목소리가 뒤통수를 찌르더구나.

"아... 아빠, 치... 치킨요!"

표현하지 않으면서 저절로 얻기를 바라지 말자. 그런 방식은 네 엄마 한 명이면 충분하다.



# 의욕 상실

그러니까 뭔가 갑갑해 보이는 모녀 기분을 풀어주고 싶었다. 썬루프를 열고 달리는 차 안에서 시야를 하늘에 잘 맞추고 상상력만 조금 발휘하면 마치 날아다니는 기분을 느낄 수 있거든. 세상 가장 안전하고 저렴한 비행 방법이다.

"햇빛 때문에 눈부셔."
"하늘이 맑지 않아서 실감이 잘 안나."

엄마와 네가 한마디씩 하더구나. 손발이 맞아야 뭘 해먹지. 그나마 색다른 기분을 느꼈다는 짧은 소감이 네가 엄마보다 약간 착하다는 증거다.



# 살 만하다

"엄마, 그래도 요즘 날씨 정도면 살 만하지 않아?"
"뭐 아직 본격적으로 더위가 시작하지도 않았는데. 8월도 있고 9월까지 가 봐야 알지."
"작년 이 맘 때는 얼마나 더웠는데."

세상에는 살 만한 이유만큼 못 사는 이유도 있고, 못 사는 이유만큼 살 만한 이유도 있단다. 못 살겠는데 살아야 하는 한 가지 이유로 살아내기도 하고, 살 만한데 딱 한 가지 이유로 못 살아내기도 하지. 어쨌든 살 만한 이유를 잘 찾아내는 모습이 흐뭇했다는 말을 하고 싶었다.



# 초심

젤리 종류를 좋아한다는 거 잘 안다. 모처럼 한 봉지 샀는데 뭔가 거슬렸나 보구나.

"포장은 그대로인데 일단 양이 줄었어. 젤리 한 개 크기도 약간 작아진 것 같아. 그리고 어쩐지 맛도 예전보다 못해."

객관적 확인이 가능한 내용과 주관적 판단에 기댈 수밖에 없는 내용이 섞였더라. 그 불만 사항을 한마디로 이렇게 정리하더구나.

"아빠, 그 젤리가 초심을 잃었다고."

그러니까 살면서 참 지키기 어려운 가치 가운데 하나에 대한 기준이 생겼네.



# 영작

"아빠, 성인식이 영어로 뭔지 알아?"
"어덜트 이벤트(adult event)?"

빵 터진 이유를 좀처럼 모르겠더라.

"커밍 옵 에이쥐 셀머니(coming-of-age ceremony)."

진짜 그거라고? 아무리 생각해도 아빠 표현이 맞는데. 잠깐 영미권 애들이 한심했단다.



# 발치2

유난히 오물거리며 밥을 먹던 너는 고개를 갸웃갸웃하더니 기어이 손가락을 입 안으로 넣더구나.

"뺐어."

내민 손 끝에는 작은 이가 하나 놓여 았었고, 표정은 뭔가를 해냈을 때 은근히 드러내는 자신감으로 넘치더라.

"네가 이 뺀 거 처음이야?"
"뭐 먹다가 그냥 빠진 적은 있어도 내가 뺀 거는 처음이지."

축하한다. 고작 이 하나 뺀 게 뭐라고 일상을 마법처럼 만드는지는 모르겠다만.



# 보지 못하는 이유

"예지야, 너 요즘 책 읽는 모습을 통 못 보겠더라."

엄마 지적은 늘 그렇듯 날카롭다. 예민하게 받아들이지 않을까 걱정되더구나. 다행히 대답이 참 담담하더라.

"안 보니까."

그래, 책을 안 보는데 책 읽는 모습을 볼 수 있을 리가 없지. 생각할수록 후련하고 통쾌한 답이다.

 

 


# 못하는 것

엄마가 주문한 재활용 쓰레기통 조립을 맡겼더니 훌륭하게 해냈더구나.

"예지, 도대체 못하는 게 뭐야?"

그냥 조금 과장해서 칭찬 한 번 하고 싶었을 뿐인데, 너는 나지막이 답하더구나.

"수학."

그런 솔직한 태도조차 마음에 든다.



# 바른말 고운말

젓가락으로 콩을 골라내더구나. 아직 콩밥은 버겁니? 맛있는 콩인데 식감이 적응되지 않나 보다.

"예지, 옆에 된장국과 된장국 안에 두부도 모두 콩으로 만든 건데 잘 먹잖아?"
"그냥 콩하고 된장은 달라. 두부도 다르고."
"다르지. 된장은 썩은 콩으로 만들었고."

만만한 된장으로 콩 이미지를 개선하려는 시도가 지나쳤던 것은 인정한다. 하지만, 그렇게 빤히 쳐다보면서 바로 정정할 줄은 몰랐다.

"아빠, 발효라는 좋은 말이 있잖아요. 발효!"



# 뉴스

방에서 엄마 재채기 소리가 연이어 들렸다. 서너 번째 기침을 듣자 갸웃하던 네가 말하더구나.

"나한테 옮았나?"
"감기 아직 안 나았어?"
"감기 기운이 약간 남은 것 같기는 해."

이럴 때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게 짓궂은 아빠들 습성이다.

"예지열병?"

잔뜩 찌푸린 표정으로 항변하더구나.

"아빠, 나도 뉴스 본다고. 쫌!"



# 비틀즈? BTS?

비틀즈 듣는 김에 흥에 겨워 설거지를 할 수도 있는 거다. 결코 설거지가 힘겨워 비틀즈를 듣는 게 아니란다. 그런데 어떻게 네가!

"비틀즈도 줄이니까 BTS네."

아니다. 완전히 틀린 말도 아닌데 그래도 그건 아니다!

 

# 육아 RPG

연일 엄마 귀가가 늦어 손에 닿는 대로 살림을 처리하다 보니 네 힘까지 빌릴 궁리를 하게 된다. 큰 기대 없이 시키는 일마다 착착 해내니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손끝 야무진 것은 딱 엄마네.

지력 : 80
무력 : 70~99(아빠 어깨 칠 때)
공감력 : 100
마력 : 80~100(아빠에게 부탁할 때) 
계산력 : 60
지구력 : 70~90(휴대폰 볼 때)

내가 가장 아끼는 이 캐릭터를 어떻게 레벨업 시킬까 고민 중이다.

 

# 셔틀이어도 괜찮아

너와 함께 마트에서 휴지, 세제 등 '엄마 미션'을 수행하는데 전화벨이 울렸다.

"아직 마트야?"

정말 마트가 아니였으면 했지만 우리는 아직 마트였다. 그래도 시도는 해봐야겠지.  

"아니, 밖으로 나왔어."
"마트구만, 피자 한 판만 사서 우리 사무실에 갖다 줘."

귀는 왜 그렇게 밝다니. 피자를 사면서 너에게 하소연 할 수밖에 없었다.

"내가 빵셔틀이야? 빵셔틀이나 하는 찐따냐고! 이 상황을 어떻게 해석해?"
"아빠, 그냥 사랑한다고 쳐."

그러기로 했다.



# 기구한 삶

"아빠, 병아리가 막 나오기 전에 알을 삶은 요리."

뭔지는 알겠다만 이름은 모르겠구나. 검색하니 '곤계란'이라고 하네. 먹어본 적은 없다.

"그거 진짜 너무 불쌍해. 막 나오려고 하는데 그렇게 삶아지는 게 진짜 억울하고 고통스러울 것 같아. 물론 병아리로 잘 태어나더라도 곧 치킨이 되겠지만."

 

그러게 말이다. 닭 일생은 참 기구하구나. 그래도 세상을 한 번 보는 게 훨씬 낫지 않느냐는 네 의견에 동감한다. 그나저나 오늘도 치킨이니?



# 귀가 시각

바닥에 널브러진 가방, 의자에 위태롭게 걸친 점퍼, 왜 거기 있는지 이해할 수 없는 곳에 내용물을 반쯤 흘린 보조가방까지. 네가 얼마나 서둘러 뛰쳐나갔는지 알겠더라. 밤 10시까지 들어오기로 한 약속은 기억하려나? 몇 분 늦었으면 좋겠다. 주말 휴대전화 사용 시간을 절반 이하로 제약받았을 때 난감한 표정이 보고 싶거든. 네가 한 약속이니 원망은 이런 아빠를 만난 엄마에게 하면 된다.



# 대인의 풍모

너를 힘들게 한 친구 이야기를 듣고, 아빠가 그 친구 처지를 고려해서 이야기를 풀었을 때 괜히 네 편 먼저 들지 않아 섭섭해 하지 않을까 걱정했다.

"그 친구가 아빠 얘기를 들었으면 좋겠어. 힘이 될 것 같아."

 

'힘이 될 것 같아'는 말을 수십 번 반복 재생하며 행복해 하는 중이다. 너는 생각보다 곱절은 큰 아이구나.



# 꿈다운 꿈

너를 힘들게 하는 수많은 고민을 듣고 마치 준비된 것처럼 함께 답을 찾아가는 여정을 차곡차곡 진행하는 아빠가 놀랍지 않니? 하지만, 13살 딸과 도란도란 얘기하는 시간이 어느덧 두 시간을 넘겼다는 것이야말로 하찮은 아빠에게는 눈부신 훈장이다.

"어떤 방법으로든 나를 더 잘 표현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

 

진로나 직업 따위가 아닌 꿈다운 꿈을 응원한다.



# 신뢰

가족 말고 믿을 사람이 없다는 고민에 괜히 웃음이 나왔다. 쉽게 사기당하지는 않겠구나. 친구들 거짓말에, 험담에 속상했니? 아빠도 엄마도 거짓말하고 험담하는데 어쩌나. 그러고 보니 너도 거짓말 많이 했잖아.

"믿을 만한 사람을 믿는 게 아니라 믿고 싶은 사람을 믿는 거야."

어리둥절하는 네게 다시 말했다.

"네가 늘 진실만 말하고 착하고 다른 사람 욕을 하지 않아서, 그러니까 믿을 만해서 믿는 게 아니라 이예지니까 믿는다고. 아빠가 너를 믿고 싶어서 믿는다고. 믿음은 거래가 아니라니까."

눈을 내려 깔며 웃는 모습이 예뻤다. 그럴 기회가 흔하지는 않겠지만 믿고 싶은 사람 만나기를, 그런 사람 소중히 여길 줄 알기를 바란다.



# 아쉬운 이별

"좋은 사람은 왜 일찍 가는 걸까?"

죽음을 여러 모로 생각하는 때가 됐구나. 아주 좋다. 죽음에 대한 다채로운 고찰은 삶을 더 풍요롭게 할 테니. 그래도 좋은 사람이 일찍 가는 것은 아니란다.

"좋은 사람은 언제 가도 일찍 가는 거야. 좋은 사람은 100살이 돼서 떠나도 보내는 사람 마음 속에서는 일찍 가는 거라니까."



# 제철 과일

귤 하나 까먹더니 이렇게 말하더구나.

"겨울에는 이불 속에서 귤 까먹으면서 TV 보는 게 최고야."

그래서 이렇게 화답했다.

"봄에는 이불 속에서 딸기 먹으면서 TV 보는 게 최고지? 여름에는 이불 속에서 포도 먹으면서 TV 보는 게 최고일 것이고. 가을에는?"
"헤헤, 사과"

제철 과일 따위는 아무 상관없는 거지?



# 알아서 기어

쌓인 그릇을 보고 이렇게 투정부렸다.

"아빠는 담배를 끊었는데 엄마는 설거지를 끊은 것 같지 않니?"

 

슬며시 웃던 너는 이렇게 답하더구나.

"그건 잘 모르겠는데, 아빠가 엄마 하기 전에 미리 하는 거 아냐?"

혹시 그거 '알아서 기었다'라는 뜻이니?



# 성과를 만드는 법

"아빠, 시간이 없어서 공부 하나도 안 했는데 학원에서 영어 단어시험 30개나 맞췄다."
"30개? 몇 문제인데?"
"60문제."
"절반 맞췄다는 거네."

웃음이 터질 수밖에 없었다. 고작 50점이 '예습하지 않고 50점이나 받아낸 성과'가 될 수 있구나. 꽤 훌륭한 재능이다.

"미리 준비도 안 했는데 그 정도면 잘한 거지."


아빠가 늘 말하잖아. 공부 안 하는 애들 중에 네가 제일 똑똑한 것 같다고.



# 피자 사이즈

피자 L 사이즈를 시켜 남기느니 R 사이즈 먹는 게 낫겠다고 했을 때 너는 단호하게 아니라고 했어야 했다. 왜 너도 음식물 쓰레기를 남기지 않는 게 좋겠다며 동의했니? 방에서 10분 정도 통화하고 식탁에 앉았더니 3/8조각 남았더구나. 어색하게 웃는 네 표정을 쉽게 해석했다.

"더 먹을 수 있을 것 같아?"
"아빠는?"
"예지 더 먹을 것 같으면 아빠는 다른 거 먹으면 돼."
"한 조각만 더 먹을게."

그렇게 75%가 사라지더구나. 여느 여성 동지처럼 너도 많이 먹는다는 말은 질색하기에 이렇게 표현할게. 이제 너도 적게 먹지 않는 게 아닌 것이 아닌 것으로 추정한다.



# 여자 친구, 남자 친구

"어떤 면에서 남자 애들이 편해."

너에게 처음 듣는 명제라 흥미로웠다.

"꼬투리 잡으면 놀릴 생각만 해서 그렇지 겉과 속이 다르지는 않거든."

놀릴 생각만 하는 것은 네 앞에 있는 40대 중반 남자도 마찬가지다. 어쨌든 비교 대상인 여자 애들은 겉과 속이 상당히 다르다는 게 문제일 텐데 뭐가 그렇게 속상했니?

"분명히 속으로 좋게 생각하지 않으면서 겉으로 친절한 척, 뒤에서는 욕하고. 그런 게 훤히 보이는데도."

점점 핵심에 다가서는 느낌이 들었다.

"예지야, 재밌는 것은 그 친구도 다른 친구 겉과 속이 다른 것은 훤히 볼 거야. 자기만 절대 들키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할 뿐이지. 예지도 마찬가지일 수 있고. 누구나 쉽게 빠지는 함정이야."
"그럴 수도 있겠네. 나는 조금 더 솔직해지려고."

그래, 응원할게. 그나저나 너무 그럴 필요 없는데 참 성숙하다. 

 

# 악플에 대하여

"아무 이유 없이 욕하고 상처 주는 댓글을 쓰는 사람들 마음은 뭘까?"

플라스틱 병뚜껑을 주며 벽에 힘껏 던져보라고 했다. 아주 야무지게 던지더구나. 전등 스위치를 겨눴다면 완벽했다. 불이 꺼졌으니까.

"병뚜껑에게 미안해? 세게 벽으로 던져서 미안해?"
"아니. 내가 왜?"
"사람은 감정을 이입하지 못하는 대상에게 주저 없이 잔인할 수 있어. 그런 댓글을 쓰는 사람은 뚜껑만큼도 댓글 보는 사람을 생각하지 않을 걸."

알듯 말듯한 표정이 재밌다. 늘 나 아닌 다른 것과 교감하고 공감하기를 바란다.



# 정서에 좋잖아

너와 추억이 느닷없이 일상을 비집고 들어올 때가 있다. 떠오른 사연은 곧 맥락 없는 웃음으로 번지곤 한다. 너도 혹시 그럴 때가 있니?

"추억? 갑자기 물어보니까 잘 생각 안 나는데."
"아빠가 그래서 엄마에게 어렸을 때 잘해 줄 필요 없다고 했는데. 기억도 못하잖아."
"아빠, 어렸을 때부터 잘해 줘야 아이들 정서에 좋아요."

오호! 요것 봐라.

"그러면 너는 정서가 좋아?"
"나는 잘 모르겠는데 우리 반에 정서가 좋지 않은 친구는 분명히 있어."

묘하게 설득되는구나. 



# 느끼하다면서

엄마가 늦는다는구나. 아빠 회사에서 받은 치킨 쿠폰을 쓰기 딱 좋을 때다. 배달 음식을 자제했으면 좋겠다는 엄마 제안은 자기가 빠져서 시샘한다 치자꾸나.


"아빠, 같이 먹어요."
"먼저 먹어라. 아빠 할 일이 좀 있어서."

급한 업무를 처리하고 식탁에 앉았다. 벌써 몇 조각 남지 않았더구나. 최근 네 성장 속도를 감지하고 있어 당황하지 않았다.

"양념이 되지 않은 그냥 후라이드는 좀 느끼해서 몇 개 먹지 않아도 금방 배가 불러요."

이번에는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 안경

기어이 안경을 쓰는구나. 자라면서 거치지 않았으면 하는 과정 중에 하나지만 할 수 없지. 좋을 수 없다면 더 나빠지지 않는 방법을 찾는 것도 지혜다.

스마트폰으로 웹툰 보고, 스마트폰으로 카톡하고, 스마트폰으로 영상 보고, 스마트폰으로 게임하고, 스마트폰으로 심지어 그림까지 그리잖아. 네 눈 건강을 해친 원흉으로 스마트폰을 지목하지 않을 수 없으나 너는 그 영향력이 얼마나 미미한지 적극적으로 변호하겠지. 아빠 건강 이상 신호에 술이 미치는 영향이 거의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익숙한 논리란다.

2019년 12월 31일 태양과 2020년 1월 1일 태양이 뭐가 그렇게 다르겠냐며 빈정거릴 수도 있다만, 아니다. 세상을 대하는 마음가짐이 변하면 지난 1초와 앞으로 1초도 다른 법이다. 14살 때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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